슬램덩크
2023년 2월 3일. 무려 슬램덩크를 보고 왔다. 나는 92년생이라 슬램덩크가 연재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슬램덩크 세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슬램덩크를 10번이상, 산왕전은 20번이상 본 슬램덩크의 팬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슬램덩크는 무려 산왕전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솔직히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가서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일을 쉬고 있었던 상태라 돈을 아껴야되서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일을 하게 됐고, 바로 가서 보게 됐다.
남자들의 만화
슬램덩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남자의 만화다. 남자들이 열광하고 남자들이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입하고, 남자들의 청춘을 그린 만화.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강백호의 행동들을 보고서 웃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는데, 남자들은 그 열정이 웃기면서도 감동적이지만, 여자들에게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행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이 만화에 매료되었고, 이 남자들처럼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었다. 다시 영화를 보니 처음 이 만화를 봤을때의 충격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그 때 당시에 무언가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무언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만화를 보며 그러한 것을 찾고 싶었다. 강백호처럼.
사쿠라기 강백호
강백호의 일본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다. 사쿠라기의 뜻은 벚꽃인데, 불량학생에 골칫덩이였던 사쿠라기가, 봄대회까지 성장해서 북산에 필수적인 남자가 되고, 정점을 찍고서 장렬하게 퇴장하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미치 또한 이것을 중의적으로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미치라는 말은 본 무대 좌측 배우들이 출입하는 통로를 말하지만, 본 무대와는 다르게 사이드 스토리를 전개하는 또 다른 무대가 되기도 하고, 연기가 끝나고 팬들에게 꽃을 받고 교류하는 장소기도 하다.
즉 하나미치라는 말 또한 사쿠라기가 나중에 어떤 운명이 될지에 대한 암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사쿠라기가 우리들의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에게도
벚꽃이 피는 시기가 있다
우리들의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날때는 젊을 때다. 20대~30대. 물론 이 때를 발판으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중년 이후에 가서 빛을 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힘이 넘치고, 열정적인 시기는 바로 이 때다.
그리고 바로 이 때가 우리들의 봄, 벚꽃이 피는 시기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벚꽃이 짐에 따라) 힘을 일어나고, 말년에는 은퇴를 하게 된다.
난 그래서 그런지 사쿠라기의 열정적인 태로를 너무나 닮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벚꽃이 필 시기, 벚꽃을 피도록 준비해야 되는 시기니까.
사실 강백호만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 또한 매력적인 이유는, 다들 산왕전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며, 그 이전에 방황이 우리들의 젊은 날의 방황과도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황의 상징 중에 하나가 정대만이다.
불꽃남자
송태섭이나 강백호 또한 방황을 많이 했지만, 나는 방황하면 정대만이라고 생각한다. 강백호는 자신의 좋아하는 일(농구)를 늦게 찾아서 방황을 한 것이지, 일찍 찾았으면 서태웅 뺨치게 몰입했을 수도 있다.
송태섭의 경우도 사고도 많이 쳤지만, 정대만처럼 아예 농구를 그만두었던 것은 아니다. 반면 정대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일찍 찾고,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자신이 존경하는 안선생님 제자로 들어가고, 심지어 MVP까지 탄 상황에서 방황을 했다.
이런 정대만이기에 더더욱 자신이 농구를 쉬었던 것에 대해서 후회를 많이 할 것이다. 정대만의 최악의 단점이 체력인데, 이 체력문제는 이 시기 때문이니까.
우리가 어떤 만화든 드라마든 영화처럼 시나리오가 있는 무언가를 볼때 기승전결이 명확한 만화를 보는 것이 재밌다. 인물 또한 평면적이기 보다는 입체적인 인물이 재밌다.
슈퍼맨처럼 모든것이 완벽한 캐릭터보다는 배트맨처럼 이중성이 명확하면서 약점도 명확하고 한계도 명확하지만 그것을 꽤뚫어나가는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슈퍼맨도 크립토나이트라는 약점이 있는 것이다.
정대만처럼 방황을 한 캐릭터 또한 이런 매력이 있다. 사납고 거칠고, 그러면서도 하나에 꽂히면 몰입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튀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의 주인공 강백호도 아니고, 주장 채치수도 아니고, 에이스 서태웅도 아니고, 불꽃남자 정대만도 아니고, 송태섭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송태섭의 일대기
생각해보면 원작에서는 북산에서 송태섭에 대한 얘기가 제일 적었다. 강백호는 주인공이니까, 채치수는 주장으로서 부담을 가지고 고뇌하는 장면이, 서태웅은 에이스로서 활약하는 장면이, 그리고 정대만은 불량아에서 에이스 슈터로서의 성장이.
반면 송태섭은 돌격대장이라고 하지만 키도 너무 작기에 활약상이 미비했던 것도 사실이고, 어쩌다가 이렇게 불량하게 된 것인지, 또 그의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송태섭이 어떻게 농구를 시작했고, 또 무엇을 등에 업고 있고, 어쩌다가 정대만과 싸우게 되었는지 까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난 이것도 나름 흥미롭긴 했다. 사실 나도 송태섭만큼이나 키가 작은데, 나로서는 골대가 3m 위에 있는 농구를 재미도 아니고 시합에 까지 나갈 생각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다.
아쉬운 점
개인적으로 전개가 굉장히 밋밋하다. 아마 이건 20번이나 넘게 산왕전을 본 나로서 전개과정이나 결과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강백호의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라는 대사가 빠졌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이 대사는 슬램덩크의 주제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따분하기 그지 없는 기초를 반복하고, 그리고 방황하고, 다시 도전하고, 열정을 가지고, 정말 좋아하게 되다가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런데 이 대사가 빠졌다. 다른 대사도 아니고 제일 중요한 대사가. 조재중에 관한 얘기는 송태섭의 일대기를 그려야 되니 뺐다 생각하지만, 이 대사는 너무 중요하다.
"내용자체만으로 주제를 보여주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굳이 빼야될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